Categories: 성경 공부

요한복음의 고찰

요한 문서가 풍성히 다루는 주제 중 하나가 기독론입니다. 오직 요한만이 예수님께 "말씀"이 라는 호칭을 직접 적용합니

다(요 1:1; 계19:13:요일 1:1도 가능성이 있음). 물론 이와아주 비슷한 신학이 다른 곳에서도 발견됩니다(예를 들면 히

1:1-4) 많은 신약 저자들은 한 위격이신 예수님의 독특성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증언합니다. 그분은 하나님으로 경배받

으셔야 한다는 것,  그분은 완벽한 그분은 완벽한*인간, 즉 신비한 성육신을 통해 나신 역사상의 인물이시라는 것(예를

들면 빌 2:5-11을 보라)등입니다. 하지만 이 점을 가장 집요하게 내세우는 것이 아마 요한 문서 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 묘사되거나 하나님이라고 불립니다(요 1:1; 20:31) (요한계시록 곳곳에서) 그분은 하나님의 보좌에 함께 앉

아 계십니다. 동시에 그분은 육신이 되신 말씀, 즉하나님의 자기 계시입니다.(요1:14) 그분은 듣고, 보고, 만질 수 있도록

사람들에게 나타난*생명이십니다(요일1:1-4) 아울러 요한 문서는 예수님의 신성을 강력하게 증언하는 동시에 예수님이

아버지께 복종하여 임무를 수행한다는 사실을 가장 열렬히 주장하는데(예를 들면 요 5:16-30; 8:29; 14:31; 계5장), 이것

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호칭을 풍부하게 표현하는 방식의 일부입니다. 물론 다른 신약 문헌도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

성과 더불어 잃어버린 자들을 구원하는 그분의 유일한 능력을 역설합니다. 그러나 요한 문서들은 이 점을 유난히 강조합

니다(예를 들면 요14:6;요한일서 여러곳에; 계5장) 5권의 모든 요한 문서에는 근본적인 문제를 아주 단순하게 제시하는

형식상의 이원론(formal dyalism)이 존재합니다. 이 이원론의 야극(*빛과 어둠, *진리와 거짓, 위로부터와 아래로부터,

*믿음/*순종과 불신앙/불손종)이 제 4복음서에서는 선명하게 제시되고, 요한 서신에서는 중요한 목회적.교회적 쟁점과

연결되며, 이것이 나중에 요한계시록에서 묵시적인 색채를 띱니다. 요한계시록셍서는 선과*악의 투쟁에 새로운 양극이

나타나는데, 그것은 *바벨론과 새 *예루살렘, 음녀와*어린양의 신부, 짐승의 표와 어린양의 표다. 그렇지만 어떤 경우에

도 요한 문서의 이원론은 한 분 하나님의 주권을 손상하지 않습니다. 요한의 이원론은 결코 존재론적 이원론

(ontological dualism)으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요한 문서의 선명한 대립항은 한 가지 더할 나위 없는 혜택을 선

사합니다. 이런 대립항은 선과 악의 미묘한 변형이나 모호한 회색 지대를 다루는 데는 적절하지 않지만, 우리 시대를 특

징짓는 애매한 사고(think-ing)와 상대주의를 완저히 배격합니다. 요컨대 이원론은 근본적인 쟁점의 핵심을 드러내고 부

각시킵니다.

신약을 연구하는 이들에게,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 이미 이루신 일을 즐거워하는 것(실현된*종말론)과 하나님이 그

리스도를 통해 마지막에 하실 일을 기대하는 것(미래적 종말론)사이에 지속적이고 상호 보완적인 긴장 관계가 있다는

것은 상식에 속합니다.  요한 문서에는 신양 성경의 여러 가지 미묘한 강조점의 차이가 여러 가지 못브으로 반영되어 있

습니다. 제 4복음서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지금 보장된 영생을 강조함으로써 실현된 종말론 쪽으로 흐릅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요한복음은 하나님의 아들이 마지막 날에 죽은 자들을 일으키실 때를 고대합니다 (5:21, 25; 6:39-40). 요한일서

는 최후의 적그리스도가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지만 많은 적그리스도가 이미 세상으로 나갔다고 주장하는데, 이로

써 이미"마지막 때" 가 왔다는 사실을 증명합니다.(2:18). 반면에 요한계시록은 전 교회가 하나님의 마지막 승리를 고대

하면서 소망 중에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22:20)라고 부르짖어야 한다고 가르치지만, 이러한 미래 종말론의 자세는

성도들로 하여금 현재에 신실하게 인내하도록 가르치기 위한 것입니다.

다른 문헌에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요한복음과 요한일서에서는 특히 믿음이 강조됩니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요한

은 명사적인 믿음(faith)보다는 동사적인 믿음(believing)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요한은 명사를 피하고 거침없이 동사를

사용합니다.  당혹스런 대조가 나오기는 하지만(예를 들면 요 3:36; 요일 5:1-5) 요한은 고지식하지 않습니다.  그는 가

짜 믿음의 위험을 깊이 인식하고 있으며, 그들에게 경고하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아울러 그는 거짓*사랑(요일 3:16-

20)의 위험에 대해서도 인식하고 있습니다. 이런 본문에서 요한은 야고보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요한복

음 5:24("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

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은혜, 즉 이신칭의라는 방울의 공식과

강한 연관성이 있습니다.

"성령에 관한 요한의 가르침은 다른 신양의 강조점과 일치하는 경우가 많지만 몇 가지 주목할 만한 특징이 있습니다. 이

런 특징 중 상당수는 사상의 독창성보다는 표현상의 특징에서 기인합니다. 오직 요한만이 성령을 ‘피라클레

테'(paraclete, 요 14-16," 보혜사")라고 부릅니다. 성령의 역할은 (1) 예수님의 모든 가르침과 그 의미를 생각나게 하고

밝혀 주는 것입니다.(2)세상으로 하여금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확신 시키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이 떠나신 뒤 예수님을

대신하여 제자들 속에, 그리고 제자들과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물론 마지막 내용은 예수님이 첫 번째 ‘보혜사’라는 사실

을 암시하는데, 요하일서 2:1-2에서 이 점을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요한일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모든 성도들이

"기름부음"을 받았다고 주장하는데 (2:24-27), 이것은 성령을 가리키는 것이 거의 확실합니다. 어떤 학자들은 이 ‘기름부

음’과 바울이 말한 성령의 증언(롬 8:15-16)을 연결시킵니다.  물론 요한 서신의 맥락에서 성령의 기름부음은 준 ( 準) 독

립적인 ‘증언’이 아니라, (요한의 주장대로)참된 신자들에게 필연적으로 뒤따르는 교훈과 가르침 속에서 분명히 나타나

기 때문에 이것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기는 합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성령에 대한 언급이 더욱 드뭅니다.  요한

계시록의 언급은 무척 간단하거나(예를 들어 계1:10)난해한 상징으로 가득합니다. 예를 들어 :일곱 영" 이라는 표현 중에

적어도 몇 가지는 사실상 성령을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계1:4). 물론 이 점에 대해서도 노란의 여지는 있습

니다.  요한 문서는 핍박이라는 주제에서도 푸성한 교훈을 줍니다. 요한은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에서

어쩔 수 없이 여러가지 고난을 겪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것이 주님이 가셨던 길이

기 때문입니다. 제4복음서는 자신만의 색채로 핍박이라는 주제를 다루기도 하지만(예를 들면 요 15:18-25), 공관복음서

와 대응을 이루기도 합니다(예를 들면 마10장). 요한일서와 요한이서의 주된 반대 세력은, 한때 같은 교회에 속해 있었

다가 그들을 저버린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원시 영지주의 이단에 취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요한은 이탈자들을 "세

상"에 편승한 사람들로 보기 때문에, 그들에 대해 좋은 이야기를 해줄 수 없습니다.(요일 2:15-17). 물론 요한은 위험한

이단의 비신앙적인 행동을 경계하라는 말이, 배타적인 교회 왕국의 건설을 지지하는 것처럼 이용당할 수도 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완곡하게 나무라면서 그들의 실체를 폭로하려고 합니다. (요삼). 한편 요한계시록은 요한 문서

중에서 용과 그의 공범자인 짐승의 분노의 과녁이 되어 버린 하나님의 백성들의 상태에 가장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입니

다. 요한계씨록을 어떻게 해석하든, 이 책은 성도들로 하여금 로마나 다른 이방 제국 혹은 사단의 제국이 아닌 하나님의

통치를 확신하면서 끝까지 신실함을 지키라고 끈질기게 권고하는 책입니다.  요한 문헌집에서 가장 긴 두 책은 성서 시

학적인*예배의 의미를 밝히는 데 중요한 공헌을 합니다.  구약 본문에서 신약 본문으로 넘어오면서 예배 용어와 강조점

에서 전반적인 변화가 생깁니다. 그 초점이 성막/성전,희생 제사, 제사장의 중재, 정해진 절기와 금시으로부터 예수님의

*희생이 가지는 유일성과 궁극성으로 전환되고, 아울러 그에 상응하는 지평의 확장이 일어납니다.    예배는 더 이상 고

대의 성전 숭배나 성직 제도에 의해 제한을 받지 않으며, 주일아침에만 국한된 활동은 더더욱 아닙니다.  오히려 예배는

삶의 모든 것을 포괄합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인들이 살아 있는 제물로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면서 모든 것을 하나님

의 영광을 위해 행하는 법을 배우기 때문입니다. 제4복음서는 이러한 발전에 획기적으로 기여합니다. 예수님도 이 새로

운 "때"에 아버지가 찾으시는 참 예배자는 더 이상 예루살렘과 그 성전(혹은 다른 어떤 지역)에 제한을 받지 않고 "영고

진리로" 그분께 예배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에는 "진지하게" 보다 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이제는 모세 언약

의 규정 떄문에 생긴 장소의 제약이 사라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참된 예배에는 "지닐", 즉 오직"진리"이신 예수님(14:6)을

통해 주어진 계시의 진리가 따르게 될 것입니다. 요한계씨록에서는 예배라는 주제가 암시적인 경우도 있고 명시적인 경

우도 있습니다. 요한은 하늘의 예배 찬송에 동참하도록 독자들을 간접적으로 초청합니다.(예를 들면 1:7; 4:11;5:9-

10,12, 13:15, 17-18; 12:10-12; 15:3-4; 19:1-3, 5,6-8). 독자 편에서 볼 때 이런 찬송들은 하나님 중심의 경배일 뿐만 아

니라 하나님의 주권과 종말론적 확신의 고백이기도 하다. 요한계시록 5장에서 이 찬송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

에게 "바쳐지는 것도 의미가 있습니다.

어떤 학자들은 제 4복음서가 예수님의 죽음을 계시적인 용어로만 설명하기 때문에 대속이나 화해같은 신약의 중심 주제

와 상당한 간격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듯이 이런 견해는 분명 잘목입니다. 제 4복음서에서

는 대속의 희생 제물이신 예수그리스도는 부활 이전의 분위기에 걸맞도록 상징적인 범주에서 표현될 수밖에 없다. 오히

려 그렇기 떄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생동감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요한복음 6장에서 예수님의 생명의 떡입니다. 

1세기에 떡은 두 가지 주식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따라서 떡을 먹지 않으면 구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농경사회에

사는 사람은 누구나 인간이 먹는 모든 것이 이미 죽은 것의 찌끼라는 사실을 아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고기이건 생선이

건 보리건 옥수수건 상관없습니다. 따라서 에수님이 세상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자기 생명을 주러 하늘에서 내려온 참

떡이라고 말씀하실 때(6:51), 이것은 예수님이 죽지 않으면 우리가 죽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만약 그 분이 죽어 우리가

그분을 ‘먹지’ 못하면 우리는 결코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가장 엄정한 대속 개념입니

다. 요한복음 10장에서  예수님은 양을 위해 자기 생명을 주는 선한 목자십니다.  요한복음 11장에서 하나님은 섭리 가

운데 가야뱌를 통해 말씀하시며 이로써 대제사장 가야바는 자기가 알고 있는 것 이상을 이야기합니다. "한 사람이 백성

을 위하여" 죽는 것이 더 유익합니다(11:50-51),"하나님의 어린양"이라는 말의 배경에 대해 아무리 많은 가능성이 열려

있다 하더라도(1:29), 제4복음서는 전반적으로 예수님이 희생제물로 바쳐지는 얼니양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려줍니

다.  그렇기에 요한계시록 4-5장의 환상이 부가되는 것은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복과 시미판(오른손에

있는 두루마리로 상징된)일 실현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은 사자인데. 그분은 하나님의 보좌에서 출현한 어린양이기도

합니다.  이 상징은 전사-어린양(완벽한 왕권을 상징하는 일곱 뿔)인 동시에, 잔인하게 살해당했지만 지금은 살아 있느,

죽임당한 어린양으로 그분을 묘사합니다.  요한계씨록 전체에 ‘어린양의 승리’라는 제목을 붙일 수도 있습니다. 요한일

서는 그리스도인의 확신(5:13)이 변화된  행위나 신앙과 최소한 부분적인 관련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렇지만 여ㅣ서

도 하나님이 인간을 받아들이시는 근본적인 이유는 결코 인간의 행위 때문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인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 때문입니다.(요일 2:1-2).

마지막으로 요한 문헌집의 구약 성경 인용에 대해서도 해야 할 말이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구약을 마태복음보다 덜 인용

합니다. 요한 서신들은 구약을 전혀 인용하지 않으며. 단 한명의 구약 인물만을 언급할 뿐입니다. (가인, 요일 3:12).

요한계시록 역시 직접 인용은 거의 삼가합니다. 그렇지만 이렇게만 말하면 너무 과소평가하는 것입니다. 요한 문헌집 전

체에는 ‘언약’ 이란 단어가 단 한 번밖에 등장하지 않지만, 그 사상(특히 복음서의 사상)은 철저하게 언약적이라는 사실

이 밝혀졌습니다.(J.Pryor,Jobn). 게다가 요한복음은 구약을 직접 인용하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예

수님을 성전의 대형(antitype)이나 만나(manna), 이스라엘의 큰 절기 등으로 묘사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입니

다.  요한일서는 예레미야 31장 및 관련 본문을 인용합니다.(자세한 설명을 원하는 사람은 *요한 서신을 보라). 그리고

요한계시록은 구약을 길게 인용하기를 꺼리지만, 구약으로 흠뻑 젖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 구약의 인유나 메아기라 아

니 구절이 거의 없습니다. 어떤 경우 요한은 자기가 본 환상이 구약의 기대의 성취라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 논증합니

다. 요컨대 요한 문서에서 구약이 어떻게 인용되는지를 면밀하게 연구해 보면 요한 신학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성경 문헌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면서 의존하는 방식을 파악하 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이로써 요한 문서는 진정

한 의미의 성서(즉 ‘성서전체’) 신학을 이해하는 데 기여합니다.

출처:  IVP성경 신학사전 발췌

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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