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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3:1-15]

요한복음 성경본문 3장1절-15절


[개역성경]

(요 3:1)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관원이라

(요 3:2)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가로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요 3: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 3:4)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요 3: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요 3: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요 3: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요 3: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요 3:9)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가로되 어찌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요 3:10)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하느냐

(요 3:11)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거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 증거를 받지 아니하는도다

(요 3:12)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요 3:13)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요 3: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요 3:15)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표준새번역(개정)]

(요 3:1) 바리새파 사람 가운데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유대 의회원이었다.

(요 3:2) 이 사람이 밤에 예수께 와서 "랍비님, 우리는, 선생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임을 압니다. 하나님께서 같이하지 않으시면, 선생님께서 하시는 그런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요 3:3)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다시 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

(요 3:4) 니고데모가 예수께 말하였다. "사람이 늙은 뒤에, 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 어머니 뱃속에 다시 들어갔다가 태어날 수야 없지 않습니까?"

(요 3:5)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요 3: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다.

(요 3:7) 너희가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내가 말한 것을, 너희는 이상히 여기지 말아라.

(요 3:8) 바람은 불고 싶은 대로 분다. 너는 그 소리는 듣지만,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는 모른다. 성령으로 태어난 사람은 다 이와 같다."

(요 3:9) 니고데모가 예수께 묻기를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하니,

(요 3:10)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네가 이스라엘의 선생이면서, 이런 것도 알지 못하느냐?

(요 3:11)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에게 말한다.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을 말하고, 우리가 본 것을 증언하는데, 너희는 우리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요 3:12)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요 3:13) 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인자 밖에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

(요 3: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과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한다.

(요 3:15) 그것은 그를 믿는 사람마다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고 하는 것이다.


[현대인의성경]

(요 3:1) 바리새파 사람 중에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유대인의 의회

의원이었다.

(요 3:2) 그가 어느 날 밤, 예수님께 와서 "선생님, 우리는 당신을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으면 선생님이 베푸시는

기적을 아무도 행할 수 없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요 3:3) 그래서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내가 분명히 너에게 말하지만 누구든지 다시 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 하고 대답하셨다.

(요 3:4) 니고데모가 예수님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다시 날 수 있겠습니까? 어머니 뱃속에 들어갔다가 다시 태어난다는 말씀입니까?" 하고 묻자

(요 3:5)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다. "내가 분명히 말해 두지만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다시 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다.

(요 3:6) 육체에서 난 것은 육체이고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다.

(요 3:7) 너는 다시 나야 한다는 내 말을 이상히 여기지 말아라.

(요 3:8) 바람은 불고 싶은 대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불어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이와 같다."

(요 3:9) 그때 니고데모가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요 3:10) 그래서 예수님이 그에게 대답하셨다.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이면서 이런 것도 모르느냐?

(요 3:11) 내가 사실대로 말하지만 우리가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거해도 너희는 우리 증거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요 3:12) 내가 세상 일을 말해도 너희가 믿지 않는데 하늘의 일을 말한다면 어떻게 믿겠느냐?

(요 3:13) 하늘에서 내려온 나 외에는 아무도 하늘에 올라간 사람이 없다.

(요 3: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쳐든 것같이 나도 높이 들려야 한다.

(요 3:15) 이것은 나를 믿는 사람마다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KJV]

(요 3:1) There was a man of the Pharisees, named Nicodemus, a ruler of the Jews:

(요 3:2) The same came to Jesus by night, and said unto him, Rabbi, we know that thou art a teacher come from God: for no man can do these miracles that thou doest, except God be with him.

(요 3:3) Jesus answered and said unto him, Verily, verily, I say unto thee, Except a man be born again, he cannot see the kingdom of God.

(요 3:4) Nicodemus saith unto him, How can a man be born when he is old? can he enter the second time into his mother’s womb, and be born?

(요 3:5) Jesus answered, Verily, verily, I say unto thee, Except a man be born of water and [of] the Spirit, he cannot enter into the kingdom of God.

(요 3:6) That which is born of the flesh is flesh; and that which is born of the Spirit is spirit.

(요 3:7) Marvel not that I said unto thee, Ye must be born again.

(요 3:8) The wind bloweth where it listeth, and thou hearest the sound thereof, but canst not tell whence it cometh, and whither it goeth: so is every one that is born of the Spirit.

(요 3:9) Nicodemus answered and said unto him, How can these things be?

(요 3:10) Jesus answered and said unto him, Art thou a master of Israel, and knowest not these things?

(요 3:11) Verily, verily, I say unto thee, We speak that we do know, and testify that we have seen; and ye receive not our witness.

(요 3:12) If I have told you earthly things, and ye believe not, how shall ye believe, if I tell you [of] heavenly things?

(요 3:13) And no man hath ascended up to heaven, but he that came down from heaven, [even] the Son of man which is in heaven.

(요 3:14) And as Moses lifted up the serpent in the wilderness, even so must the Son of man be lifted up:

(요 3:15) That whosoever believeth in him should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

[NIV]

(요 3:1) Now there was a man of the Pharisees named Nicodemus, a member of the Jewish ruling council.

(요 3:2) He came to Jesus at night and said, "Rabbi, we know you are a teacher who has come from God. For no one could perform the miraculous signs you are doing if God were not with him."

(요 3:3) In reply Jesus declared, "I tell you the truth, no one can see the kingdom of God unless he is born again."

(요 3:4) "How can a man be born when he is old?" Nicodemus asked. "Surely he cannot enter a second time into his mother’s womb to be born!"

(요 3:5) Jesus answered, "I tell you the truth, no one can enter the kingdom of God unless he is born of water and the Spirit.

(요 3:6) Flesh gives birth to flesh, but the Spirit gives birth to spirit.

(요 3:7) You should not be surprised at my saying, ‘You must be born again.’

(요 3:8) The wind blows wherever it pleases. You hear its sound, but you cannot tell where it comes from or where it is going. So it is with everyone born of the Spirit."

(요 3:9) "How can this be?" Nicodemus asked.

(요 3:10) "You are Israel’s teacher," said Jesus, "and do you not understand these things?

(요 3:11) I tell you the truth, we speak of what we know, and we testify to what we have seen, but still you people do not accept our testimony.

(요 3:12) I have spoken to you of earthly things and you do not believe; how then will you believe if I speak of heavenly things?

(요 3:13) No one has ever gone into heaven except the one who came from heaven–the Son of Man.

(요 3:14) Just as Moses lifted up the snake in the desert, so the Son of Man must be lifted up,

(요 3:15) that everyone who believes in him may have eternal life.


니고데모와의 대화 (요 3:1-15)


예수께서는 유대인의 성경을 가르치는 선생이었으며, 유대인의 관원이었으며, 산헤드린 공회원이자 바리새인이었던 니고데모와의 대화를 통해 거듭남이 무엇인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니고데모와 예수의 대화는 얼핏보면 마치 서로 동문서답으로 선문답을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구원의 조건이 전적으로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니고데모는 후에 바리새인들이 공회에서 예수를 정죄할 때에 그것이 불가하다고 반박하였으며(요 7:50, 51), 주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자 아라마대 요셉과 함께 시체를 십자가에서 가지고 와서 장사하였습니다(요 19:38-42).


3:1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관원이라


“니고데모”(헬, 니코데모스)라는 이름은 “백성의 정복자”라는 뜻을 갖습니다. 우리는 성경의 인물들의 이름이 그 인격을 표현하여 준다는 것을 감안할 때에, 니고데모는 유대인들 중에서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종교적으로 크게 성공한 지도자적인 위치와 직분에 있는 사람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바리새파 :

이들은 종교적인 순수주의자들로서 B.C. 2세기의 "하시딤" (하나님의 충성된 자들)에서 발전하여 정치적인 일들보다는 종교적인 일에 전념해 온 집단이었습니다. 그들의 최고 관심사와 기쁨은 율법(물론 유전과 전승도 포함하여)을 낱낱이 지키는 데에 있었습니다. 이 표준으로 판단할 때 그들은 모범적인 유대인들이었습니다(빌3:5-6). 바리새인은 헬라어 “파리사이오스”라고 하며, “파리사이오이”는 히브리어 “페루쉼”에서 유래된 것으로 “분리됨”을 의미합니다. 이 용어는 그들을 반대하는 자들에게서 불려진 별명으로 추측되어지는데, 정결예식을 철저히 준수하는 집단으로 표현되어집니다. 그들은 가능한 한 자신들을 다른 사람들에게서 멀리 떨어지게 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에게 율법과 규례에 대한 비판을 공개적으로 하였다. 바울도 자신을 바리새파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그가 율법을 철저하게 준수하였다는 의미인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도 필연적으로 이같은 분리정책은 그들보다 못한 모든 사람들을 경멸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갔을 것입니다. "너보다 더 거룩하다"는 그들의 태도는 바리새인이라는 이름을 오늘날 불명예스러운 이름으로 바꾸어놓고 말았다. 사랑과 자비에 앞서 엄한 율법준수를 요구하고 메마른 율법주의자와 혼합된 이 오만한 태도는 그들을 예수 그리스도와 정면으로 충돌하게 만들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정통신앙을 책망하신 것이 아니라 그들이 범한 오류와 교만과 무정한 생활자세를 책망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의 영향은 그들의 숫자에 비하여 미미한 것이었습니다. A.D. 70년 예루살렘이 멸망한 후로 유대교가 발전해 온 것은 바로 이들의 노선을 따라서였다. 그들은 개인적인 경건과 엄한 윤리적인 표준, 그리고 더 잘 알려진 가혹한 율법주의에 계속 강조점을 두어 왔습니다.

그들은 다른 유대인들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였지만 유대인들의 존경은 받았다.


유대인의 관원이라 “관원”(헬, 알곤, ruler)은 국가 또는 지역의 사무를 담당하는 사람 즉 공무원을 의미합니다.


3:2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가로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왜 니고데모가 밤에 예수를 찾아왔는지에 대해서는 많은 견해가 있습니다.

그러나 니고데모가 밤에 예수를 찾아온 것은 유대인들의 이목을 피하기 위해서 였을 것입니다. 그가 낮에는 상당히 바쁜 사람이었기에 밤에 찾아 왔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쨌든 니고데모가 밤에 예수를 찾아왔다는 것은 그가 예수를 정말로 만나고 싶었던 간절한 이유가 분명합니다.

사회적으로나 정치적, 종교적으로 확고한 위치를 갖고 있는 니고데모가 가난한 목수의 아들이며 서른살밖에 되지 않은 예수께 “랍비”라는 호칭을 사용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유대인들의 랍비는 정규적인 연구과정을 거쳐야만 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예수께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을 알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 말은 예수를 선지자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선생이라는 단어는 헬라어 “디다스칼로스”로서 종교적인 지도자(눅2:46)에 사용되었습니다.

또 그는 예수가 행하는 표적을 하나님이 함께 하는 일로 정의합니다.

더욱이 “내가 안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안다”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니고데모에게는 몇 명의 동행자가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3: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진실로 진실로”(아멘 아멘): 요한복음에서 나타나는 예수님의 독특한 반복적인 표현입니다.

니고데모는 어떻게 하면 거듭나는가를 묻지 않았습니다. 단지 예수님의 신분에 대해서 묻고 있었을 뿐입니다. 즉 니고데모는 예수의 신분에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반면 예수는 그에게 중생을 통한 구원의 도리를 가르치심으로 관심의 방향을 바꾸십니다.

그리고 그 교훈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진실로 진실로’라는 말을 거듭 밝히고 있습니다.


성경본문의 "거듭나다"는 말의 헬라어는 “겐나오 아노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겐나오”는 “낳다”는 뜻이며, “아노덴”이란 단어는 다음과 같은 뜻을 갖고 있다.


1) 위로부터, 하늘로부터

2) 처음부터, 시작부터, 맨 첫 번째에서

3) 새롭게, 다시


성경에서 대부분의 “아노덴”이라는 단어는 주로 “위로부터”, “하늘로부터”라는 뜻으로 기록되어졌습니다.

즉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겐나오는 수동형이므로 “위로 의하여 다시 낳아진다”라는 뜻으로서, 의역하면「위에서+나다」가 됩니다.


또 다른 성경 구절에서 “거듭나다”는 말은 벧전1:3과 1:23에도 기록되어 있는데 그 헬라어는 “아나 겐나오”입니다.

여기에서 주목할만한 것은, “아나”라는 단어도 “위에”라는 뜻과 반복적인 “다시”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역시 벧전에서도 “거듭난다”는 단어는 “위에서+나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나라를 본다는 말(헬라어, 에이돈)은 단순히 “쳐다본다”는 뜻이 아니라, “경험하다, 참예하다”는 적극적인 뜻을 가집니다


3:4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겐나오 아노덴“(위에서+나다)를 이스라엘의 대표적 선생인 니고데모가 문자적인 중생, 즉 “두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나는 것”으로 잘못 인식하였던 것입니다.

즉 이 본문의 요점은 니고데모가 “다시 태어나다”는 해석을 하고 있으며, 예수님은 “위로부터 태어나다”라는 해석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거듭난다는 것은 단순히 다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태어난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며, 인간의 육체적인 거듭남이 아니라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임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담은 땅에서 났지만, 예수님이 하늘에서 난 분이십니다,

우리도 땅에서 났지만, 우리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면 우리는 위로부터 난 자, 즉 하나님께로 난 자가 되어집니다.

그래서 하늘에 속한 사람은 땅에 속한 아담의 형상이 아니라, 하늘에서 나셨던 하늘에 속한 예수의 형상을 입어야 합니다.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무릇 흙에 속한 자는 저 흙에 속한 자들과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는 저 하늘에 속한 자들과 같으니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고전15:47-49)


3: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예수님의 답변은 “물과 성령으로 나야한다”고 하십니다.

즉 중생(거듭남)이란 단순히 두 번을 태어난다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중생(重生)을 뜻하는 말은 헬라어는 “팔링게네시아”로 "다시 새롭게 됨"을 뜻합니다.

성경에서 “팔링게네시아”는 디도서 3:5절에서는 "중생"으로 번역되었고, 마태복음 19:28절에 "다시 새롭게 됨"으로 번역되어 두 번 사용되어졌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딛3:5)


팔링게네시아는“ 팔린”과 “게네시아”의 합성어로서 팔린은 “새롭게(부사), 후면에(장소), 다시 한번(시간의)”라는 뜻을 갖습니다. 게네시아는 출생, 세대라는 뜻으로 rebirth, regeneration 라는 뜻을 갖습니다. 마태복음19장28절의 “팔링게네시아”는 “세상이 새롭게되어”로 번역되므로서 개인적 거듭남의 의미라고 볼 수 없으므로, 즉 거듭남의 중생이란 의미로서 “팔링게네시아”는 디도서에 유일하게 기록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팔링게시아(중생)는 “성령에 의하여 새롭게 되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딛3:5)


즉 중생은 인간적인 의지나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에 의한 역사를 의미합니다. 성령의 새롭게 하심입니다.

흔히 “거듭난다”는 것에 대해서, 행위적이나 윤리적, 도덕적인 것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그러한 거듭남도 좁은 의미에서 거듭남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지만, 새로운 생명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위 성경본문은 중생(거듭남)을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않는다”고 정의하고 있기 때문압니다.


물과 성령: 성경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고 하였습니다.

과연 이 물과 성령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여러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1) 이 "물"을 "세례"로 해석하는 견해가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세례라는 의식을 통하여 거듭나지는 못하며, 그러한 견해는 카톨릭의 견해와 같습니다.


(2) 칼빈은 물을 "성령"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석하면, 본문 5절의 “물과 성령”은 “성령과 성령으로 거듭난다”가 되어 부자연스러운 반복이 되고 맙니다.


(3) 물은 자연 출생을 뜻하고 성령은 위로부터의 출생을 뜻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본문에서 물은 거듭남의 필수적인 부분으로서 성령과 상호보완적인 거듭남의 의미가 있습니다.


(4) 셋째로 “물”은 세례 요한의 회개 사역을 뜻하며 ‘성령’은 그리스도의 성령이 개인에게 적용되는 것을 뜻한다는 설명입니다. 즉 물은 “죄씻음”을 상장한다는 뜻입니다.


(5) 물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는 견해가 있는데, 성경에서는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난다”고 기록되어 이있으며(벧전1:23). 이 말씀이 영이요 생명이라고 하였고(요6:63),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신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말씀은 거듭남의 조건이 되어집니다.

–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엡5:26)

–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벧전1:23)

–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요6:63)

또한 씨뿌리는 비유에서 씨는 말씀을 뜻합니다(눅8:11, 마13:19-20)


물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양한 견해가 있지만, 거듭남은 성령으로 인함이라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므로 본문의 뜻이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4)번과 (5)번이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3: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이 본문에서 인간을 육과 영의 이원론으로 분리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육은 “자연상태의 인간”을 뜻하며 영은 “성령하나님”을 뜻하는 것입니다.

거듭남은 성령하나님의 전적인 사역이며 곧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즉 육(인간)으로 태어난 것과 영(성령)으로 태어난 것을 대조시키고 있습니다.


중생, 거듭남이란 인간의 죄적상태에서 영적으로 죽은 죄인을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는 뜻이며, 거듭남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고후5;17에서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도다"라고 말하였습니다.


3: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기이히 여기다”는 “다우마조”로 표현하였는데 일반적으로 ‘이해력이 미치지 못함으로 인해 야기되는 놀라움’을 뜻합니다(Bernard).


3: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본문은 구약성경을 인용한 것입니다,

"바람의 길이 어떠함과 아니밴 자의 태에서 뼈가 어떻게 자라는 것을 네가 알지 못함과 같이 만사를 성취하시는 일을 네가 알지 못하느니라"(전11:5)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며 죄를 사하심을 받고 주님으로 고백할 때에 우리는 성령을 받게 됩니다.

그 성령의 주도적인 성향에 의하여 우리는 거듭나게 되는 것입니다.

바람이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인간은 알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만의 사역이시다.

이제 니고데모는 유대인의 지도자인 만큼 그의 해박한 구약성경의 지식으로 이 구약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성령을 바람과 관련시키는 것은 구약의 전통과도 관련을 갖습니다.

즉 “성령”을 의미하는 헬라어 “프뉴마”는 그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루아흐”와 함께 둘다 “바람”이라는 뜻을 의미합니다.


3:9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가로되 어찌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니고데모의 답은 이제 전혀 이해를 못하는 답이 아니라 매우 놀라는 부정적인 물음으로 바뀝니다.

본문의 “아포크리노마이”(to answer)는 “자력으로 결정하다, 대답하다, 말하기를 시작하다”는 의미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이해를 못하던 니고데모는 의문과 감탄의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라고 질문하는 니고데모의 심정은 진리를 갈망하는 욕구로 가득차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유대인의 전통적 사고를 보면, 혈통상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하나님의 언약에 따라 당연히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만 한다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3:10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하느냐

늘 가르치고 지도하던 니고데모가 이제는 배우는 입장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는 질문하게 된다. 영적인 질문에 대하여 그 의문이 완전히 풀리기 않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그의 고정관념과 편견은 진리에 이르는 길을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하느냐 본절에서 예수께서는 니고데모 개인의 영적인 무지를 책망하셨다. 니고데모는 유대인의 지도급 인사요 선생이었으나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는 영적 진리에 대해서는 아직도 깨달음이 없었다.


3:11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거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 증거를 받지 아니하는도다


“너희”라는 대명사는 니고데모를 포함하는 바리새인들 혹은 예수를 거부하는 유대인들을 가르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누구를 말하는지 많은 견해가 있습니다,


(1) 메이어 (Meyer)는, 주님께서 단순히 자기 자신만을 가리켜 “권위의 복수”(plu 즉 `경어적 복수’를 사용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2) 바이스(Weiss)와 루타르트(Luthardt)는 `그리스도와 세례 요한’을 의미한다고 말하였습니다.

(3) 벤겔(Bengel)과 스티어(Stier)는 `삼위 일체로서의 그리스도’를 뜻한다고 말하였습니다,

(4) 루터(Luther)는 `그리스도와 선지자들 전체’를 말한다고 하였습니다,

(5) 고데(Godet)와 웨스트콧(Westcott)과 행스텐베르그(Hengstenberg) 등은 `예수와 그의 제자들’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니고데모가 “우리”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데에 대조하여 예수님도 “우리”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는 견해를 Carson 이라는 학자가 제시하였습니다.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라고 표현 한 것은 예수님과 그 제자들이라는 표현이 가장 상식적입니다.

또 삼위일체를 의미한다는 견해 중에서, 특별히 성령으로 거듭남에 대해서 설명하시고 계시므로 성령과 예수님을 뜻한다는 견해(Bengel)도 있습니다.


3:12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땅의 일이 무엇이며, 하늘 일이 무엇을 가르키는가? 이것에 관한 해석도 다양합니다.

(1) 헌터(A. M. Hunter)에 의하면 “땅의 일”이란 물, 바람, 탄생 등과 같은 지상적인 현상이나 사건들인 반면 “하늘의 일”이란 아버지가 아들을 보내는 것과 같은 초월적 사건들이라고 하였습니다.

(2) “땅의 일”이란 니고데모가 결국 이해하지 못했던 영적 거듭남을 포함한 하나님 나라의 사업이며, “하늘 일”이란 14절에서 말씀하신 바와 같은 것 즉 십자가에서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의 사건 등을 의미한다고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3) 전자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세상 안에 거하게 되신 것으로 그리고 후자를 그리스도가 그의 사역을 모두 마치고 하늘로 올라가시고 장차 모든 성도들에게 영원한 처소를 제공하실 것을 의미한다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4) 마지막 견해로서, “땅의 일”을 예수께서 실례로 드신 바람부는 현상으로 이해 하기도 합니다. 즉, 예수께서 자연 현상인 땅의 일을 예로 들어 설명해 주어도 이해하지 못한 다면 “하늘 일” 곧 영적 실재를 직접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 자명하다는 말씀입니다.

이중 네 번째 견해가 보편적인 견해입니다.


3:13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본문을 단순히 예수 외에는 아무도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다고 해석하면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왜냐하면 구약에는 에녹과 엘리야가 승천했다는 기록이 있고, 종말적으로 신자들도 모두 부활하여 천국 생활을 경험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구절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앞의 구절에 어떠한 내용이 있었는지를 유추하여야 합니다.

앞 문장은 니고데모와 예수와의 대화의 연속성을 가집니다. 니고데모는 거듭나야만 한다는 말의 의미와 성령과 바람의 비유에 대하여 이해를 못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바로 앞문장에서 이와같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요3:12)


바로 예수님 자신이 하늘에 계셨다가 내려오신 분으로써, 예수님 자신 외에는 원래부터 하늘에 계셨던 자가 없었다는 것을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올라가서 그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할꼬 할 것이 아니요”(신30:12)


신명기30장12절은 하나님께서 지키라고 하신 율법이 하늘에서 받아오거나 먼 바다에서 받아온 명령이 아니며 그렇게 어렵거나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즉 여호와의 말씀은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라는 이야기이다.

에녹과 엘리야는 하늘로 승천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은 원래부터 하늘에 있었던 자가 아니므로, 하늘로부터 신령한 지식을 가지고 내려와서 사람들에게 그 지식을 들려주고 가르친 적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정체성을 이해하지 못하였고 거듭나야만 하나님나라를 볼 수 있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어찌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요3:9)


하늘의 일은 오직 예수님만이 아십니다. 원래부터 하늘에 있었다가 내려오신 분은 오직 예수님뿐이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아래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요8:23)


에녹과 엘리야는 하늘에 있었던 자들이 아니라, 땅에 있었던 자들입니다. 즉 하늘에 있다가 내려온 인자(예수) 외에는 처음부터 하늘에 올라가 있었던 자가 아무도 없었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하늘에 계시는 분이라는 사실도 니고데모는 알지 못하였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으로만 알았고 “랍비”로만 알았던 것입니다(요3:2)


위의 견해가 가장 일반적인 견해이지만 문법적으로 살펴 볼 때에 또 다른 견해도 있습니다. 다음의 견해도 매우 타당성이 있습니다.

“올라가다”는 단어는 능동형입니다. 에녹과 엘리야는 자신이 하늘로 올라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올리신 것으로 수동형이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올라가다"는 말은 (헬라어:아나바이노) 능동형 완료형 동사입니다.

에녹과 엘리야는 자신이 하늘로 올라간 자가 아니라, 올림을 받은 자가 됩니다.

에녹(창5:24.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수동형)

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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